발표 공포증과 영어 공포증이 만나면..?

발표 공포증과 영어 공포증이 만나면..?

오늘 오전에 발표할 일이 있었다. 

크라이슬러와 벤츠의 합병이 왜 실패 했는지, 문화적인 차이에서 그 원인을 찾고 분석하는 게 우리의 과제였다.

2주 전부터 준비할 시간이 있었지만 지나치게 여유로운 나와 조원들은 급하게 발표 전날 피피티를 마무리했다.

사실 내가 발표를 맡았기 때문에 굉장히 압박감이 있었다. 

나는 발표를 잘 못한다. 20살 때 처음 수업 시간에 발표를 해봤는데 손, 발, 목소리  등 떨 수 있는 건 다 떨었던 것 같다.

학년이 오르면서 몇 번 더 발표해볼 기회가 있었고, 이젠 사시나무처럼 떨진 않는다. 결정적으로 스타트업을 시작한 뒤엔 상금이 걸린 발표도 해봤기 때문에 최근 들어서야 좀 나아졌다고 볼 수 있다.

(지난 주 내내 눈이 왔고 이번 주 화요일이 되어 서야 햇빛이 들기 시작했다.)

(이것 때문에 이번 주는 계속 도서관에 박혀있었지... 눈을 뚫고 열심히 다녔다.)

하지만 이번엔 좀 다르다. 영어로 발표를 해야 된다니

누가 봐도 내 영어 실력은 우리 반에서 하위권에 속한다. 하지만 잘하고 싶은 욕심이 컸기 때문에 압박감이 엄청났다.

나름 잘해보겠다고 자료 조사에 며칠을 투자했다. 그리고 대본을 만들어서 몽땅 외워 버릴 셈이었다. 하지만 피피티가 당장 하루 전날 만들어졌기 때문에 그럴 시간이 부족했다. 일주일 전부터 하루도 영어 발표 걱정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이건 어젯밤

자꾸 욕심이 나서 하루 전 날임에도 불구하고 자료 조사를 더 했다. 사실 이건 멍청한 짓일지도 모른다. 발표 연습이나 더 하는 게 나을 지도

어쨌든 스트레스를 너무 받아서 맥주 없이 버티기 힘들었다. 화면 속에 두 회사의 대표가 웃으며 악수를 하고 있는 사진이 보인다. 이왕 합병 했으면 좀 잘할 것이지 왜 실패해서 이 고생을 하게 만드는 거니.

사실 친구가 만들어준 피피티를 보니 실망스러웠다. 우리나라 대학생들이 피피티 정말 잘 만드는 편이라고 듣긴 했지만 이 정도로 차이가 날 줄이야...ㅎㅎㅎ 그냥 슬라이드 배경 색만 예쁜 걸로 바꾸고 텍스트로 구구절절 다 설명한다. 이모티콘이나 사진 따위 없다. 이래 놓고 잘 만들었다고 나한테 들고 와서 자랑하더라. 이거 손 본다고 고생 좀 했다. 하지만 여전히 마음에 들진 않았다. 

자려고 누웠지만 걱정 가득...이었지만 곧 기절했다. 

다음 날 아침부터 긴장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사실 성적에 들어가는 발표도 아니라서 큰 부담을 가질 필요가 없었는데 영어+발표 공포증이 겹쳐서 많이 스트레스 받은 듯 하다. 그래도 잘하려는 마음에서 생긴 압박감이니 좋게 생각해야지. 결과적으로 발표는 나름 잘 끝났다. 친구가 만들어준 긴 설명이 가득한 피피티가 발표하는 사람 입장에선 편했다. 보고 읽으면 되니깐 ㅎㅎㅎ 그래도 성의 없어 보이긴 싫어서 중간에 추가적인 정보를 외워서 전달하려고 노력했고, 교수님이 좋은 평가를 내려주셨다. 막상 발표를 시작하니 그다지 떨리지도 않더라. 이건 뭐 점수에 들어가지도 않고 상금이 걸린 것도 아닌데 라는 생각이 들면서 마음이 편해졌다.

발표가 끝나니 심신이 편해진다. 좋아진 날씨가 내 마음을 대변하는 것 같다. 어제부터 날씨가 좋았다. 하지만 내가 여유가 없었던 탓에 주변을 살피지 못했었다. 오늘 오후에 본 하늘은 너무 맑았다. 기쁜 마음으로 다음 이어지는 수업은 빼먹고 자체 휴강 했다. 인생이 이보다 행복할 수 없다. 

집중력을 위해, 피곤함을 잊기 위해서 찾던 커피가 이젠 여유를 즐기기 위한 커피로 바뀌었다! 고작 발표 하나 가지고 온갖 유난을 떨었다니 지금 생각하면 어이가 없다. 하지만 첫 영어 발표를 성공적으로 마쳐 앞으로 자신감을 가질 수 있을 것 같다. 심지어 다음 발표도 내가 해야겠다는 생각도 했다. 

자체 휴강 후 내가 제일 좋아하는 연어를 구워 먹고 곧 운동하러 갈 예정이다.

인생이 이보다 여유로울 수 없다. 영국 날씨가 이 보다 좋을 수 없다

그리고 앞으론 발표 하나 가지고 유난 떨지 말아야지...ㅎㅎㅎㅎ